성경의 많은 선지자나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수많은 고통과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임에도 가장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한 사람들 이었음에도 어째서 강도높은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요?
예수님의 열두제자도 선교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은 죽음 앞에서 마저 주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우리가 아는 훌륭한 선지자 이며 예수님의 제자 였음에도 그는 거꾸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참수형이나 돌에 맞아 죽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시련을 겪었으나 그 보상으로 크나큰 축복을 받는 경우도 있었죠.
아브라함은 100세에 언약의 자손인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순종을 보여주죠. 그후 그는 크나큰 축복을 얻게됩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하남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였으나 엄청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얼마나 심했냐면
"욥기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고통가운데서도 주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는 이전보다 훨씬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환자입니다. 시한부 환자.
매일이 어쩌면 고통 스럽고 두렵지요. 그래서 주님께 빕니다.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걸 아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공의의 법칙이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 환난이 없다면 축복 또한 없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살아 간다면 그만큼의 신앙을 행사하는 것도 힘들어 집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2:43~4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23~24
우리가 축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희생이나 고통 혹은 고난을 겪거나 내가 가진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버리는 자야말로 가장 위대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해야 할것은 그저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생명을 버리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고통과 고난 희생은 모두 다른 사람과 자신을 향한 사랑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과 고난 희생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이생과 우리가 죽은 후의 생에 모두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중 살아생전 고통만 맛보고 떠난 사람들은 사후에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살아생전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만큼의 축복을 덜어내고 받게 됩니다. 그것이 공의의 법칙입니다.
순종과 봉사에 대한 보상과 죄악에 대한 벌은 언젠가 한치의 차이도 없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단순히 우리가 우리의 병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오는 축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이란 고통과 고난속에서 피어나며 온전한 믿음만이 우리에게 오는 축복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이나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고통속에서도 신앙을 보여주는 것, 선행을 행사하는것, 주께 순종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죽음이나 고통은 그외의 것들입니다. 즉 주에 대한 믿음과 신앙이라고 하는것은 지상생활을 하는동안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였느냐 예수님처럼 얼마나 봉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안에서 병이나 고통 고난이나 환난은 곁가지 에 불과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많은 힘들고 어려운 것들은 현세에 축복으로 오든지 아니면 사후에 심판받을 때 더 크게 올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끝없는 고통과 고난들은 언젠가는 더 큰 보상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시기는 현세 일수도 있고 우리가 죽은 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축복이 오지 않는다고 병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하거나 신앙이 부족하다고 부르짖을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이란 주께서 하신 행위를 옳다고 느끼고 그분의 모범대로 우리가 따라하는 것입니다.
저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두려운건 고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망 때문이죠. 이병으로 인해 죽더라도 여러분이 사랑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가족과 친족과 친구들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오늘도 실천하시는 많은 분들을 이 카페 에서 봅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 우리가 이삶에서 해야할 책무이며 주에 대한 순종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사고로 수많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두려움에 맞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내가 힘들어도 나를 돌보고 있는 가족에게 미소를 보여주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줍시다.
오히려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위로의 말을 건네줍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이 있다면 도와 줍시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앞에 선다면 그 후에는 그분께서 다 알아서 보상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말고 당당하게 맞섭시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또 고통없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위 내용은 제 개인 적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