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제주도 후기-고사리의 신

완생 l 직본직보
2025.05.11 17:50 | 조회 500

제주도에는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대부분 대학 때 친구들이에요. 제 전공이 디자인인데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많았거든요. 그 중에서도 자유를 추구하며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전 글에 썼던 친구는, 십여 년 전 제주도 한 달 살기 열풍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제주도에 둥지를 틀고 살았으니까요. 지금 한 15년, 16년 쯤 됐을까요, 그 당시만 해도 젊은 신혼부부가 제주도에 내려가서 사는 게 이색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인간극장까지 나왔었답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싱글인데 부모님이 원래 제주도 토박이세요. 아버지 직업상 친구는 초등학교 중학교는 일본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경상도에서 다녔었는데,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며 독립했고요. 대학원과 첫직장을 일본에서 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죠. 이제 부모님은 은퇴해서 제주도에 살고 계세요. 집 짓는 로망을 이루고 싶으셔서 몇 년 전에는 정말로 땅을 사서 아담하고 예쁜 텃밭 딸린 집을 지으셨죠. 친구는 계속 서울에 살고 있는데, 약 2년 전부터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아요.

마침 친구가 제주도에 내려와 있었기에, 출장 스케줄을 다 끝내고 올라오기 전에 친구를 만나고 오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야심차게 지으신 집 구경을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도 정말 미적 감각이 넘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고사리가 부르는 시즌이라며 서둘러 내려가 있었는데 같이 고사리를 따러 가자 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가서 보냈던 하루. 정말 멋진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들께도 그 하루 한번 소개시켜 드려볼까 해요.

애월읍에 있는 친구네 집 찾아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던 도로 옆 산길을 오르니 외부에는 보여지지 않았던 아담한 동네가 나옵니다. 저 길의 끄트머리에 보이는 것은 애월 앞바다에요!

짜잔! 이것이 바로 친구 아버님이 야심차게 땅 구입부터 집 건축, 마당과 텃밭 가꾸기까지 진행하신 예쁜 하우스랍니다. 빗물자국 때문에 외부 페인트를 다시 해야 한다며 친구는 약간 쑥스러워 하는데 제 눈엔 그냥 예쁘기만 하네요.

가족 모두 초보 가드닝과 초보 농사꾼들이기 때문에, 우왕자왕 한다는데요, 조그맣고 귀여운 나무부터 꽃들, 잔디, 돌길, 전구, 농기구들을 놓은 창고, 텃밭, 돌담. 어느 곳 하나 정성스런 손길 가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2층 친구의 방에서 내다본 정원입니다. 친구 방이며 집안 구석구석 예뻤지만 카메라를 들이대기엔 너무 예의가 아니어서 창문만 찍고 말았네요.

요곳은 집안 부엌 조그만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본 풍경입니다.

어머니가 그냥 디자이너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미적 감각을 가지고 계신데, 어머니 기준에는 집이 너무 맘에 안 든다면서 그냥 촌집이라며 손사래를 치시네요. 정리도 안 되어있다 하시지만 가지고 계신 예쁜 엔틱 가구와 접시만 살짝 봐도 어떤지 아시겠죠.

고사리 따고 나서 피크닉을 즐길 때 마실 차를 골라보라고 내주셨습니다.

동화 속에 나올법한 버들가지로 엮은 듯한 바구니에 커피와 차와 천혜향, 샌드위치, 커피잔, 바닥에 깔 테이블보 등을 챙겨서 나섰습니다.

친구와 어머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만 안다는 고사리 스팟! 널찍한 고사리 스팟인데요, 샛길로 들어서면 나옵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이렇게 펼쳐진 들판에서 나고 있는 고사리는 비실비실하기 때문에 좀 더 깊은 곳으로 가야 된다는군요.

좀 더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 숲을 이루고 있는 덤불 가장자리, 이런 그늘진 곳에서 자라고 있는 고사리를 찾아야 되는 거지요. 잎이 아직 피지 않은 채, 한 줄로 올라와 끝을 살며시 돌돌 말고 있는 고사리를요.

친구가 열심히 고사리를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도 이와 다를 바 없는 모양새로 열심히 고사리를 찾았습니다. 좋은 고사리를 찾아서 똑! 하고 따낼 때 그 쾌감이란요. 초보 고사리 채취자도 반하게 할 만한 그 매력. 왜 봄마다 그렇게 친구가 고사리가 나를 부른다면 제주도로 내려가지 못해 안달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친구의 호를 '고살'로 지어주었습니다.

자, 이제 웬만큼 고사리를 따서 차 트렁크에 넣어놓고, 도시락 바구니와 의자를 들고 적당한 곳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단촐하게 피크닉 준비를 마쳤습니다.

예쁜 무늬가 있는 린넨 천을 깔고, 버들 바구니에서 예쁜 잔을 꺼내 커피를 따릅니다. 친구가 아침부터 준비했다는 건강 호밀 건포도 바게트(근처 유명 빵집에서 파는 것이라는군요)로 만든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꿀맛!

아직 어제의 먹구름이 다 가시지 않은 하늘이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 아래에서 아직 물기를 머금은 초록색 풀밭, 예쁜 잔에 따뜻한 커피와 함께하는 피크닉이 금쪽 같네요.

여기서 까먹는 천혜향 맛은 또 어떻구요. 동화 속에 나오는 피터 래빗, 또는 찔레꽃 울타리의 우아한 취향의 생쥐들이 된 기분으로 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25년지기 친구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구름의 색깔이 바뀌고 있어요.

저도 친구도 안지는 오래됐지만 우리가 어려서 학교를 다닐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민했던 것들, 사회에 나와 겪었던 이러저러한 일들, 가족 간에 사람 간에 깨달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구름과 하늘은 맑은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사리와 장비들을 모두 집에 놔두고 이번에는 예쁜 커피숍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옛날 새마을 금고를 커피숍으로 만든 곳이라고 해요. 도자기 굽는 일을 같이 하는 작업장이라고도 하네요.

가게 안에 들어서면 이 제시라는 큰 삽살개가 마중을 나와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반갑게 한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바닥에 납죽 엎드려 버려요ㅎㅎㅎ 이런 나쁜 남자 스타일 같으니라고.

가게 안의 모습입니다. 이쪽에서 바라본 곳이 도자기 일을 하는 작업장이에요.

진열된 도자기들이 예쁘죠. 물론 꽤나 비쌉니다ㅎㅎㅎㅎ

귀여운 쿠키들도 보이는데요. 맨 왼쪽에 있는 게 가게 마스코트견. 이름을 딴 제니쿠키에요.

화장실 앞에도 제니가 붙어 있네요. 사랑받고 있는 제니입니다.

카페에서 즐거운 한때를 또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유명한 카레집에 왔어요. 이곳은 인도 분이 운영을 한다는데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해요. 음식도 맛있지만 특히 유명한 것은 가게를 둘러싸고 있는 널찍한 부지를 멋진 정원으로 가꾸었다는 것이죠.

가게 안 창문에서 보이는 한 자락 정원마저도 이미 올해 농사꾼의 큰 포부가 보이는 풍경입니다.

대형 난이 엄청난 크기인데 카메라 앵글 안에 다 잡히지도 않네요. 커리도 맛있고 파스타도 맛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보아요. 정말 어찌나 잘 가꾸어 놓았는지 어떤 곳을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다 정갈하고 풍성하고 매력적이에요.

마구 자란듯 싶은 야생화들도 예쁘네요.

건물 앞 한 덩어리 덤불이나 나무들도 계획 없이 세워진 건 없는 듯 해요.

가게 건물 뒤쪽으로는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요. 거기에 본격적인 예쁜 정원이 또 펼쳐져요.

식사하면서 내다보았던 정원 자락.

장작들을 쌓아놓는 장작 집.

예쁜 벽돌들이 깔려 있어서 또 어여쁜 뷰를 이루는 정원.

낮은 하얀 꽃들과 그 사이사이에 껑충하니 키 큰 자주색 꽃들. 제가 참, 꽃 이름을 몰라서 표현력이 딸립니다.

두 가지 종류의 올망졸망한 하얀 꽃들 사이에 나 있는 큼지막한 다홍색 꽃은 양귀비래요! 허가를 받고 키울 수 있는 양귀비 종류라고 하는군요.

이 외에도 제가 본 아름다운 풍경들은 많았지만 운전을 하고 있느라 모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서둘러서 렌트카를 반납하고 저녁 비행기를 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넘어서 사실상 일요일 날 집에 도착한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아이가 좋아할 법한 제주도산 과자들을 부엌 테이블에 늘어놓고, 밤이 늦었으니 잘 자라는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짐을 조금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로 돌아다니느라 조금은 바빴네요. 이렇게 이번 제주도 다녀온 후기는 마치도록 하고요. 제가 참 많은 이야기를 친구들과 또 회사분들과 나누었는데, 너무 개인적인 것들이라 여기에 올릴 수는 없지만, 삶이라는 것은요, 참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피크닉을 갔던 고사리 들판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요, 그 친구도 참 타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느라 고생도 많았고, 부모님의 못마땅한 핀잔에도 여러 가지로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애쓴 시절이 있었고. 하지만 항상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자기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가장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느끼는 것이라 했습니다.

참 맞는 말이라 생각이 되어요. 저도 제 자식에게,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평온하고 안정적인 곳을 만들고 가꾸어 가고 싶네요.

투병을 하며 지내시는 우리 동행 분들도, 삶이 허락하는 한, 평화로운 삶의 한 장소를 가꾸어 가며,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어떤 장소이던, 아니면 따뜻하게 누군가를 받아 주거나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던, 자신만의 평화와 행복을 찾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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