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금은 긴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카페에서 위로도 정보도 많이 얻고
때로는 친구같기도 때로는 든든한 선생님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어요.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과정을 적어볼게요.
우선 아빠는 췌장암 3기로 수술 받고 항암도 물론 몇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잘 끝내셨어요.
당뇨가 워낙 심하셨는데 조절도 안되서 나중에는
그냥 인슐린 맞더라고 잘만 먹자로 돌아섰어요.
2년 정도 지나고 전립선암 판정 받고 동시에 뼈암도 전이되었다고 들었어요. 분서대에서 호르몬 치료 받다가
올초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듣고
3월 초에 항문에 극심한 통증으로 동네 대장외과에서
간단한 검사 결과 이미 전립선암이 더 커지거나 진행이 된것 같다고 듣고 3월 중순에 비뇨기과에 전달.
4월 초에 대장내시경으로 검사 결과 직장암 전이.
암 사이즈가 크고 위치도 안좋고 계속 하혈을 하시는데다가 다른 장기에 전이되서 수술 의미없음. 항암도 어려울거라는 판단을 받음(4월말).
아무래도 3차 병원이라 검사받고 진료받고 설명듣고 하는게 다 각 과로 가다보니까 기다림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빠가 삶의 의지가 강하셔서 항암여부를 직접 듣기를 원하셨고 5월 19일 혈액종양내과 진료까지
그 사이 타과에 예약 잡혔던 진료들을 가는데
가는데마다 이제 더 안오셔도 될 것 같다고 예약을
안잡아주시는데 참 마음이 헛헛하더라고요.
그리고 5월 19일. 저희는 예상했지만,
역시나였고. 아빠는 강력하게 받고 싶다 말씀하셨지만
선생님도 단호히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 상태에서 항암하면 정말 빨리 돌아가신다고.
그 길로 전 호스피스 동의서와 여러 서류를 받고
예약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것도 기다림의 연속.
마지막에 들은 아빠의 여명은 2달이었어요.
호스피스 외래진료시 좀 더 설명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전립선, 뼈, 직장에서 사진상에는 간에도 폐에도 전이가 되서 통증이 상당하실 거라고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호스피스 자리를 기다리며 집에 계셨는데 통증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타진, 아이알코돈정)과 같은 것은 이미 복용하고 계셨고 점점 통증이 심해져서 잡히지 않을 때는 응급실에서 마약성진통제를 수액과 섞어서 맞고 오셨어요.
하지만 이도 점점 주기가 짧아지고,
전 급하게 2차 병원을 알아보았어요. 아빠가 많이 불안해하셔서 무조건 제가 같이 상주하는 조건으로 알아보았어요. 감사히 받아주시는 곳이 있어서 입원했고(5월 23일),
거기서 주치의샘께서 보시는 여명은 3주였어요.
그렇게 진행이 빨랐나봐요.
처음에는 다행히 통증이 잡혀서 집에서 보다는 훨씬 편해보였어요. 하지만 점점 통증은 심해졌고, 나중에는 몰핀 맞으시면서 떠나셨네요.
아빠의 마지막을 떠올려보면
특이한 임종 증상은 없었어요. 호흡도 산소포화도(이거는 코에 산소주는 거 끼고 있었어요)도, 소변도, 임종변도,
손이나 발끝이 파래지는 것도. 다 없었어요.
다만 질문글에서 올렸던 것처럼 심박수가 엄청나게 빨랐어요. 처음에는 160 다음날에는 170 마지막에는 180,가끔은 190까지 계속 쉬지 않고 뛰었어요.
주치의 샘도 첫날 보시고 저리 뛰면 갑자기 멈출 수 있고 하루 못넘기실 거라고 했는데.
아빠는 가시기 싫으셨나봐요. 6-7시간 이상으로 저렇게 뛰다가 잠깐 120-130으로 떨어지더니 또 170 이상으로 뛰더라고요. 전 그러는 사이 아빠가 몰핀에 내성오면 고통속에 가실까 걱정되고...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6월 5일
새벽. 아빠는 심장이 아닌 임종호흡을 보이시고 호흡수가 떨어지면서 그 높던 심박수도 천천히 천천히
떨어지면서 저희 곁을 떠나셨네요.
아 돌아가시기 전날 부터 입에 거품을 내뿜기 시작하셨어요. 거품양이 많은데 누워계시니까 거품에 숨이 넘어갈까 걱정되었고 거즈를 말아 살짝 껴놓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겉에만 호스로 빨아들였는데 이미 이때는 호흡이 불안정하시더니 바로 임종호흡이 시작됐어요.
마지막에 아빠한테 계속 우리는 다 최선을 다했다. 아빠 잘한거다. 걱정말고 편안히 가시라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계속 기도해주셨네요.
평소에도 눈을 뜨고 주무셔서 눈 못감으실까봐 걱정됐는데, 찾아보니 약간 젖은 손수건이나 거즈를 눈꺼풀 위에
올려두면 잘 감겨드릴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저에게는 약간 애증의 아빠였는데,
마지막에 아빠 모시고 병원 오가며 조금씩 아빠에 대해서 더 알아갈 수 있었어요. 아카시아를 보며 예쁘다고 말하던 아빠. 전 그동안 아빠가 뭘 좋아했는지 제대로 묻지도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미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어느날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이.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나 아빠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장례식때도 많은 분들이 얘기해주셨어요. 아빠가 저에게 참 고마워했다고.
최선을 다했다 생각해서 아쉬움도 슬픔도 없을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네요. 그냥 보고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혼자서 아빠를 불러보고는 해요. 한편으로는 그러면 맘 편히 못올라가실까봐 걱정도 되기는 하지만.ㅠㅠ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아무쪼록 많은 환우 분들이 건강을 찾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또 간병하시는 가족분들도 힘내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