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북촌 풍경 - 송영희 시인의 <속 터져>

미카엘2015ㅣ설본
2025.10.27 16:56 | 조회 148

여고 동창생 다섯 명이 카페를 데우고 있었다

무심코 쳐다본 친구의 휴대폰에

‘속 터져’ 문구가 떴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남편이란다

대화할 때마다 속이 터진다고 했다

“남편인데 너무한 것 아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너는?

“나는 불량 감자. 강원도 토박이인데 성질부리면 고약하거든”

오십보백보라며 모두 따라 웃었다

남편 휴대폰에 아내를 어떻게 저장했을까

와이프, 반쪽, 로또, 마누라, 레몬향기가 뽑기처럼 뽑혀 나왔다

우리는 로또와 레몬향기에 꽂혔다

로또는 부부가 하나도 안 맞는다는 거였고

레몬향기는 처음에 만났을 때 레몬향기가 나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남편이 저장했단다

아! 나도 그 소리 듣고 싶다

아니 그런 사람하고 살고 싶다

그런 소리 들으려면 너부터 남편을 좋게 저장해

친구의 일침에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불량 감자’에서 ‘따스한 감자’로 바꾸어 놓았다

송영희 시인의 <속 터져>

제 경우 항상 내 옆을 지켜주기에 아내를 옆지기라고 저장해두었는데 과연 아내는 나를 뭐라 저장했을까 궁금하여 슬쩍 염탐을 해보니 '내편'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시에 나오는 '속 터져'나 '불량 감자' 혹은 '로또'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한주간 아내와 저는 심한 감기로 고생하다가 오랜만에 북촌을 다녀왔습니다. 안국역에서 내려 운현궁에 들렀다가 재동 사거리를 지나 줄서서 먹는 안암에서 국밥 한그릇으로 점심을 먹은 후 백인제 가옥을 거쳐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정독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을바람과 가을볕의 궁합이 어찌나 좋던지 도서관 풀밭에 놓아 둔 야외소파에 누워 한참을 볕바라기를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정독도서관은 언제가도 부산스럽지 않고 한적해서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집에서 내려간 커피를 눈치보지 않고 마시기 좋은 곳입니다.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짙은 나무그늘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눈내린 풍경으로 언제나 반겨주는 정독도서관은 '옆지기와 내편'이라는 비교적 무난한 별명을 갖은 우리 부부에게는 최고의 안식입니다. 오랜만에 눈에 비치는 풍경들을 담아봤습니다.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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