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편의 소천 소식을 전하는 아내분의 글을 읽고 울며 답글 달다 과연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위암에 걸려 전절제 수술을 하고 1년 뒤 복막전이로 항암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힘들었습니다. 우리 가정보다 자신의 원가정이 먼저인 남편 때문에 경제적 문제, 남편 가족의 막말 등으로 고생해서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항암할 때 병원에 따라온 남편이 고마운 게 아니라 어떻게 모진 말로 상처 주고 헤어질까 고민했습니다.
내가 간 다음에 아이들 보호자는 있어야 하고, 이제와 헤어져야 할 이유도 없어 그냥 살지만 남편은 늘 내게 남의 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흰머리의 남편이 머리가 빠지고 있는 내게 뭐라 말도 못하고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도 몰라 허둥대는 모습에 이 사람도 참 불쌍하다 생각했습니다.
20대 때부터 자기 집의 경제적 가장으로 자기에게 손 벌리는 사람들에게 평생 뜯기고, 씩씩하고 손 벌리지 않는 무서운 아내는 병으로 나날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사는 게 두렵고 막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투실 때가 많았고 그런 날에는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드시고 방에 누워계셨습니다. 소풍날인데 잠긴 안방문 앞에서 뒤돌아서 빈 가방으로 가는 소녀를 봅니다. 시험을 잘봐서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보여줄 사람이 없어 힘 빠져 있다 할머니의 칭찬에 약한 미소를 짓는 14살의 나를 봅니다. 아버지와 오랜 불륜 관계였던 마담 아줌마의 아들 대학 입학식에 몰래 가셨다가 교통 사고가 나 어머니께 들켜 집안이 뒤집어진 날 책상에서 앉아 혼자 울던 고3인 나를 봅니다.
딸이 마담아줌마 아들보다 훨씬 좋은 대학에 붙어서 동네 아줌마의 동정과 뒷담의 대상이었다가 온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어머니에게 내가 할 효도는 다했다 생각하고 나약한 어머니처럼 살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고 살았습니다.
마음 약한 어머니는 전화하시면 울기만 하셔서 부러 밝게 웃으며 짧게 통화합니다.
평생 힘든 삶을 사셨는데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딸은 이제 가장 큰 아픔이 되었습니다.
10대 때 이미 산산조각이 난 가슴에는 어느 한 사람 들어올 수가 없었는데 그 틈에 들어와 있던 남편은 외롭고 힘들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살갑지 않고 까탈스럽고 어려운 딸이지만 의지하고 싶은데 큰 병에 걸려 약해지는 딸의 모습에 어머니 가슴은 또 아프시겠지요
딸이 항암중인 걸 처음 아신 날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내가 암 걸렸을 때는 가만히 있더니 네가 걸렸다니 너희 엄마 통곡하고 있다'고 투정부리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조금은 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불륜은 빼고
여리고 나약한 어머니, 서운하고 미울 때도 있었지만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잠시나마 당신의 자랑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당신이 나 때문에 울지 않도록 열심히 치료 받겠습니다. 당신보다 먼저 가는 불효는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착하고 다정한 아버지인 남편에 대한 마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미움보다 연민과 미안함이 생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