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청천벽력이란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거더군요. 첫 내원부터 호스피스까지..

아빠나야l폐보
2026.02.24 01:02 | 조회 2.4k

안녕하세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딸입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에 동행에 처음 글을 남겨봅니다..

​불과 보름 전인 2월 7일, 동네 병원에 갔다가 의심 소견을 듣고 응급실을 거쳐 9일 혈액종양내과로 입원. 그리고 2월 12일, 뇌부터 뼈까지 이미 온몸에 전이가 끝난 소세포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현실감은 없고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이랄까요.. 주치의 면담 마치고 나오는 순간 병원 로비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안타까우셨는지 휴지 쥐어주시더라고요...

​항암 진행이 오히려 위험하다 쇼크 올 수 있고 온몸이 전쟁터로 변할 거라고.. 의미가 없다고 통증 완화로 방향성 잡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의료계 지인 통해 알아봤지만 결론은 같더군요..

고민 끝에 아버지께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암인건 어느정도 생각하신 거 같았지만..이정도로.. 치료 불가라니..충격이 크셨겠죠.. 근데 딸 앞에선 아빤 다 알아.. 치료 하지말자 하십니다..

호스피스 의뢰서 받고 그 당일에 호스피스 동의서에 서명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명절 연휴가 병원 침상이었지만, 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하시는 음식들을 챙겨드리며 나름대로 참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잘 못 드시면서도 그저 두 딸들과 농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옛날 이야기하며 손녀딸 바라보며 그렇게 시간 보낸게 먼 옛날 같아요..

그 와중에도 맏딸로서 현실을 놓을 수 없어,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보험과 계좌 등 행정적인 부분들을 같이 체크하며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현재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급격히 안좋아지시며 가혹한 통증과 싸우고 계세요.. 그리고 이곳에 모시고 난 후, 제 심경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너져 내립니다.

적극적인 항암 대신 진통제와 수면 유도제로 아버지를 잠재울 때마다 '내가 지금 아빠한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끔찍한 통증 속에서 억지로 연명하시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호라고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긴 병수발과 무거운 결정들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실 이곳의 모든 환우분들과 보호자분들, 관련 의료인 분들 참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저와 같은 찢어지는 마음을 안고 계실 분들께 작은 위로를 전합니다.

할머니.. 아빠가 너무 큰 고통의 터널 속에서 홀로, 오랫동안 헤매지 않도록 조금만 더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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