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훈 작가의 산문을 좋아하는데 특히 꽃에 관한 묘사는 가히 백미 중에 백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산수유와 동백 그리고 매화에 대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유려하고 황홀하게 쓴 김훈 작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風葬)이다.
오사카 성 근처에는 매림(梅林)이라는 곳이 있더군요. 이곳에는 무려 100종류가 넘는 매화나무 1,200여 그루가 심어져 있어. 맑고 깨끗한 백매화, 화사한 분홍빛의 홍매화,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 수양매화 등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꽃송이 하나하나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매화 향기도 짙어 매림을 거닐다 보니 마치 좋은 술을 마신 듯 매화꽃향기에 취해 휘청거릴 정도였습니다. 매화는 꽃잎이 한 개씩 낱낱이 흩날린다고 하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매화꽃이 산화하는 모습을 보며 매화의 죽음은 풍장(風葬)이라는 작가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사카에 매화가 폈으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곧 매화가 피겠지요. 마음 같아서는 매화 맞으러 산넘어 남쪽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가 거닐었던 매림의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