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그래도 이 시간들을 함께 견뎌내 봅니다.

아빠나야l폐보
2026.03.05 16:18 | 조회 532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신 지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그 막막함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컨디션은 정말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첫 일주일은 무자비한 통증과 섬망으로 너무 힘들어하셨는데, 고비를 넘기신 후로는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고 계십니다. 특히 가족들이 곁에 없는 새벽 시간에 유독 섬망이 심하게 오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고 애가 탑니다.

지난 주말, 아버지가 갑자기 치킨이랑 피자, 시원한 콜라, 그리고 블랙커피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론 당연히 안 좋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드시고 싶은 게 있다는 것도 좋더라고요.

본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데도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시니,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들어 드리고 싶은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원하시는 것 해드리고 싶은 마음.

병동 간호사에 살짝 말씀드리고 소량만 드시게 했어요. 음식을 거의 못 드셔서 많이 드시지도 못 하시기도 하고요.

제가 평생 아버지가 콜라 드시는 걸 처음 본 것 같아요. 평소 좋아하는 음식들도 아니었는데 맛있게 드시고는 "이게 이렇게 맛있을 일이냐"며 환하게 흡족해하시는 모습을 뵈니 제 마음도 뭉클했습니다.

어제 회의 도중 병동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와서 철렁했어요. 급하게 전화 받으니 주말에 드신 음식 때문인지 가래 끓는 소리와 호흡이 안 좋아지셨다고요. 가래에 피도 섞여나온다면서..그걸 드시게 했냐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간호사의 앙칼진 목소리... 제가 예민했던 탓일까요? 하필 회사 회의 도중에 뛰어나가 받은 전화라, 끊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 안내를 받을 땐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마음도 보듬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보호자의 그 찢어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임 간호사의 태도에 어제는 참 많이 울컥하고 서러웠습니다.

좋은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덜컥 주저앉게 되네요.

이곳 카페 글들을 읽다 보면, 저보다 훨씬 더 길고 험난한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계신 분들을 보며 제가 오히려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곤 합니다.

뻔히 의학적인 정답이 뭔지 알면서도 쇠약해지신 아빠 앞에서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이 고통스러운 딜레마...

다들 겪어보셨겠지요? 숨이 턱턱 막히지만 아빠가 원하는 음식 드시고는 지으셨던 그 환한 미소, 그리고 제 상황을 이해해 주며 씩씩하게 새 학기를 맞이해 준 10살 저희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툭툭 털고 일어나 봅니다.

언젠가는 거쳐갈 슬픈 이별의 과정이지만, 이런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무거운 길을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걷고 있기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계신 모든 동행 가족분들. 우리 모두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정말 잘해내고 계시니까요.

오늘 하루도 부디 무사하고 평안하게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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