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나셨어요.

잎생로랑
2026.03.13 01:59 | 조회 3k

며칠전 아빠가 소천하셔서 엊그제 수목장에 고이 모시고 왔습니다.

그동안 카페활동을 활발히 하진 못했지만 궁금증이 있을때마다 눈팅으로나마 많은 정보를 얻은 소중한 커뮤였기에 현재 너무나 복잡한 제 마음을 스스로 정리해보고자 또 환우가족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의미한 정보전달이 될수있을까하여 늦은밤 아빠생각에 눈물을 지으며 두서없이 글을 써봅니다.

6년전 극심한 고통으로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대장암4기 판정을 받고 급히 수술을하여 대장의 암덩어리는 제거하였으나 간으로 전이된 암으로 항암을 시작하셨어요.

처음부터 40회차정도까지는 정말 암환자가 맞냐라는 주변분들의 말까지 들을 정도로 정상건강인과 다를바가 없었죠. 손발이 저리고 식욕이 없어지는 단순부작용말고는 특별한 불편도 없으셨어요. 나이대 대비 키도 크시고 뼈도 강골에다 평상시 건강에 자신이 있으셨기에..

하지만 전이가 어느정도 진행된 중증암환자셨기때문에 수치도 낮지않았고 CT나 MRI 판독상 암으로 추정되는 조직들이 보여 담당교수님은 항암중단 후 추적관찰은 지금당장 어렵다고하셨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항암치료.

간 폐 등 전이 의심.

항암 50회차 전 방사선병행.

또다시 항암치료.

항암 80회차쯤 다시 방사선진행.

또다시 시작되는 항암.

중간에 내성으로인해 약을 바꾸고 이제는 몇번인지도 모를 항암은 계속 되었고.

간 폐 신장 등등 거의 모든 장기에 전이가 진행된

아빠는 어느덧 누가봐도 암말기인 환자가 되시고 있었죠.

항암을 120회 넘게하신 아빠는 더이상 버티기힘들어하셨어요.

아빠의 삶에대한 강한 의지와 눈에 띄는 회복력에 매번 감탄하시며 현실은 그렇지않더라도 적어도 환자앞에선 일말의 용기를 보여주시던 교수님도 점점 포기의 선언을 고민하시는듯했어요.

작년중반부터는 밥을 거의 못드시고 걷는것조차 힘들어하시고 항암주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까지 갔기에 외래진료를 최소화하여 복용약으로 항암을 대체하기로 했어요.

이때부터 저희 가족은 결코 믿고 싶지않았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모든것이 부정적으로만 돌아가며 끝을향해 치닿는 아빠의 이 상황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올해 1월초. 다 먹지도 못하고 남아있는 항암약을 또 처방받으러 힘들게 지하철타고 가신 외래진료에서 아빠는 여명을 받으셨어요.

길어야 3개월. 호스피스전원을 고려하시라.

엄마는 전화로 우셨고 아빠는 늘 그렇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셨대요.

호스피스를 꺼려하며 집에있겠다를 고수하신 아빠는 그후 시간동안 급격히 안좋아지셨어요.

식사량이 없으니 체중은 한달만에 8킬로가 빠지고 근력이 빠지니 걷는게 거의 불가능하셨어요.

설연휴가 끝난 지난 2월.

집이멀어서.. 회사때문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며 아빠의 병원동행을 소흘히했던 천하의 불효자인 제가 몇년만에 아빠엄마를 모시고 교수님을 뵈었어요.

교수님은 아빠를 보자마자 입을 벌리고 놀라시며 고개를 떨구셨어요. 교수님본인도 한달만에 아빠가 이렇게 급격히 상황이 안좋아지실거라 생각 못하셨겠죠.

교수님은 아드님이 오랫만에 오셨다며 그간 거의 모든 차트를 보여주시고 비교해주시며 여명을 또 언급하십니다.

길어야 3주. 당장 내일 돌아가셔도 이상할게 없는 좋지않은 상황이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나도 짧은 남지않은 시간에 몹시 놀랐고 난 이제 무얼해야하나 두렵고 무서웠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제서야 호스피스 몇군데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모든곳이 진료조차 수일이 걸렸으며 입원대기는 최소 한달이상이 예상되는 현실이었죠.

아빠는 폐에 찬 물로 호흡을 굉장히 힘들어하셨고 식사도 아예 하지못하며 누워만 계셨습니다.

기약없는 호스피스를 마냥 기다릴수없었기에 보호자 외래를 따로 보아 교수님께 부탁드려 어렵게 병원입원을 하였고 퇴원을 종용하던 입원 일주일차 되던날 운좋게도 그사이 서울의 한 호스피스에 자리가 생겨 바로 전원하였습니다.

호스피스 3일째.

바람을 쐬고 싶다는 아빠를 휠체어에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병원옥상에 올라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기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나눈 마지막 순간이었으니까요.

호스피스 5일째.

돌아가시기전날 아빠는 호흡곤란 때문에 투여된 마약성진통제 때문에 계속 주무시기만했어요.

아빠일어나봐 계속 깨워도 눈만 한번 희미하게 떴다감았을뿐.

쌔까맣던 눈동자는 어느덧 회색에 가까웠고 초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후 새벽.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실엔 돌아가신 아빠가 편하게 누워계셨습니다.

임종 직전 호흡곤란이 극에 달해 힘들어하시며 고통스러움에 신음을 토해내셨다는 가족들의 전언을 듣고 아빠가 가장 무섭고 힘들어했을 그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함께 지켜주지못한 저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나 미쳐버릴것만 같았어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빠를 만지며 인생처음으로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아빠살아생전에 그 한마디 못해드린게 뼈에 사무치도록 너무 후회가 되네요.

장례를 마치고 수목장에 모시고 온 지금 이순간도 아빠가 이세상에 없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아요.

먼훗날 언젠가 시간이 흐른뒤 지금 이 감정은 조금이나마 사그러지고 현실에 수긍하게 되겠죠?

사람은 바보같이 잘 잊고 까먹으니까요.

아빠 사랑해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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