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종묘&익선동 나들이 - 피천득의 오월

미카엘2015ㅣ설본
2026.05.01 14:20 | 조회 1k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 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의 오월

아내와 종묘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어르신’ 대우를 받아 문화의 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고궁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입구에서 신분증 확인을 하는데, 이날따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조금 서운했습니다. 알고 보니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라 모두에게 무료 개방되는 날이었습니다.

종묘에 간 이유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조금 고급스러운 식당을 예약했기 때문입니다. 식당이 익선동에 있어,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에피타이저 삼아 가까운 종묘를 먼저 산책했습니다.

종묘는 산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떠난 이를 기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언제 가도 한적한 편이라 좋습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버거워도 종묘를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집니다. 죽음보다 괴롭고 힘든 일이 있다 해도, 그래도 사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피천득 선생도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라고, 살아 있음의 기쁨을 노래하셨습니다. 살아 있다면 신록이 눈부신 오월이든, 단풍이 아름다운 시월이든, 눈꽃이 피어나는 겨울이든 모두가 좋습니다.

종묘와 익선동에서 만난 풍경들을 전해드립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을 마음껏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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