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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2022년 말 요관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처음 병명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싸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수술과 치료를 견디시며 버텨오셨고, 이후 방광암까지 이어지면서 긴 투병이 시작되었습니다.
몸은 점점 약해졌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삶의 의지가 강한 분이셨습니다.
“나는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집에 언제 가냐.”
그 말들 속에는 살고 싶은 마음, 가족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병은 점점 어머니의 몸을 힘들게 했습니다.
혈뇨가 계속되었고, 큰 혈괴 때문에 도뇨관이 막히는 일도 반복됐습니다.
소변이 마렵다고 괴로워하시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끝까지 드시려고 하셨습니다.
미음을 조금이라도 드시고, 딸을 보면 반가워하시고,
“우리 애기.”
“가지 마.”
“내일은 안 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스피스로 옮긴 뒤에는 하루하루가 달랐습니다.
숨이 차 산소를 사용하게 되었고, 물도 잘 삼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래가 늘고,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점점 잠드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중간중간 경련도 있었고, 숨이 너무 괴로워 진정제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딸인 저는 마지막까지도:
조금이라도 더 사실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선택이 맞는 걸까
수없이 흔들리고 고민했습니다.
수치 하나에도 무너졌고, 모니터를 붙잡고 밤을 새웠습니다.
산소 수치, 맥박, 혈압…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숫자보다
어머니가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드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요.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숨은 달라졌습니다.
턱으로 숨을 쉬고, 무호흡이 길어지고, 의식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손을 잡고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제가 여기 있어요.”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긴 투병 끝에 마지막 길로 가셨지만, 끝까지 살고 싶어하셨고 가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드렸는지,
더 해드릴 수 있었던 건 없었는지.
하지만 분명한 건,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슬프고 보고 싶지만,
긴 시간 누구보다 치열하게 버텨낸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사랑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