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요즘 해 먹은 것들, 그리고 떠오르는 이들...

야아츠lYaatsl위본
2026.07.27 04:06 | 조회 1.4k

방학이라 아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와 있다

아침은 아내가 간단히 챙기고

점심은 스카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고

저녁은 대개 내 몫이다

매일 저녁 뭘 해 먹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때아닌 아들 저녁거리 고민에 살짝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래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풀린다

빈 그릇 하나에 괜히 기분이 좋고

수고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은 듯 뿌듯...

요 며칠 차려 먹은 음식들...

먹고 싶어서 만들기도 했고

아들 먹이려고 준비하기도 했는데

음식마다 동행들이 따라 나온다

한동안 부르지 못했던 이름들

어느새 많이 그리워진 얼굴들...

음식은 기억보다 오래 사람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두의 계절

후무사라는 품종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웅이쭌맘마리아님

“야아츠님~~”

베시시 웃으며 내밀던

후무사 자두가 가득 담긴 박스

그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아직 기억난다

그녀가 떠난 지도 벌써 8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해마다 후무사가 나오면 그날의 그녀는 조금도 나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붉고 노랗게 익은 자두를 씻어 접시에 올려두고 바라본다

새콤하고 달다

그녀가 건넸던 마음도 이랬을까

조금은 시리고, 오래 달았던...

후무사는 이제 내게 단순한 자두가 아니다

그녀가 잠시 다녀가는 계절이다

여름이면 하모유비끼도 꼭 챙겨 먹는다

갯장어 샤브샤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복달임 음식

베짱이연우님, 춘천댁님, 봄꽃님, 두드림님과 여수로 여행을 다니며 처음 접한..

잘게 칼집을 낸 갯장어를 뜨거운 육수에 담그면

하얀 살이 꽃처럼 피어난다

해남의 지인이 보내준 자색양파

향이 짙은 노지 깻잎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깻잎 위에 갯장어 한 점과 자색양파를 올려 입에 넣으니

여수의 바람

한자리에 둘러앉았던 사람들

별것 아닌 말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던 어느 저녁...

다음 여름에도

그다음 여행에도

우리는 다시 만나 같은 음식을 먹을 줄 알았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

누군가와 마주 앉아 한 끼를 나누는 일이

실은 당연하지 않은 선물이었다는 것을...

어제는 양평에 있는 화이트님 댁을 찾았다

9년 만...

안녕님, 상병님, 마리아님, 두나미스님, 마카다니아님과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던 그 공간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시간이 뒤섞인다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와

웃음이 터졌던 순간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투병과 삶을 이야기하던 모습들...

뒷뜰에 가마솥을 걸고 닭백숙을 해 먹던 날도 떠오른다

연기가 맵다며 웃고

연기는 미인한테만 따라간다며 너스레를 부리고

잘 익은 닭고기를 서로의 그릇에 놓아주고

따뜻한 국물 한 숟갈에 몸이 풀린다며 좋아하던 이들

그 이름들 가운데는 지금도 안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반갑고

그립고

조금은 미안해서...

잠시 울컥했다

9년이라는 시간은 많이도 흘렀는데

그날의 온기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닭 한 마리를 푹 끓인 국물처럼

오래, 따뜻하게...

그 날들을 추억하며

물에 빠진 닭을 좋아하지 않지만

중복 복달임은 닭한마리 칼국수

한뫼님 댁에서 보내준 도토리가루로는 묵을 쑤었다

불 앞에 서서 천천히 젓는다

서두르면 덩어리가 지고

한눈을 팔면 금세 바닥에 눌어붙는다

묵 하나를 만드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마침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

좋은 한우 사태와 양지로 뽑아둔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고

묵과 오이, 김치, 김가루를 넉넉히 올렸다

소고기 소보로도 듬뿍

시원하고 깊다

제법 맛이 좋다

묵사발을 마주하니 KBS 다큐멘터리 "앎" 을 촬영하던 날이 떠올랐다

제나서진맘님, 기다려님, 코스모스의 꿈님, 엄마고미님, 힘내자님...

카메라와 촬영진으로 분주했던 날

나와 마리아가 만든 묵사발을 앞에 두고 함께 둘러앉았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맛있다며 웃었고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권했다

투병하는 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것을 끓이고

시원한 것을 말아내고

한 숟갈이라도 더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건넬 수 있었던

서툰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묵사발은 점점 비워지는데

그날 나눈 마음들이 다시 채워지는...

오늘 저녁메뉴는 스키야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

신선한 채소와 여러 가지 버섯

좋은 한우를 냄비 가득 담았다

보글보글 끓는 동안

채소의 단맛과 버섯 향이 육수에 스며든다

마지막에는 쌀로 만든 우동면과 문어를 볶아 마무리했다

맛있게 먹는 아들을 바라보다

열혈생활인님이 떠올랐다

내가 만든 스키야키를 참 좋아했던 사람

맛있게 먹던 표정과

잘 먹었다며 건네던 말...

오늘의 냄비는 아들을 위해 차렸는데

내 음식을 좋아해 주었던 사람도 기억속에 함께있다

한 사람은 내 앞에서 맛있게 먹고

한 사람은 기억 속에서 그때처럼 웃는다

아들의 최애 음식 육회

그것도 내가 직접 만들어준 육회를 가장 좋아한다

꾸리살로 만들면 씹는 맛이 좋다

달고 시원한 배를 곁들이면 제법 근사하다

이번에는 골동면에 육회를 넉넉히 올려주었다

채소와 버섯, 메밀면을 들기름과 맛간장을 넣고 한데 비벼 내어주니

맛있다며 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한참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저녁 메뉴로 고민하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가 좋다

중학교 부터

학기 중엔 급식으로 삼시세끼 먹는 녀석이라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크지 않을텐데...

언젠가 아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어떤 음식 앞에서 오늘의 나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우리 아빠가 해준 육회가 참 맛있었는데...

그렇게 한 번쯤 기억해준다면 좋겠다

요 며칠의 밥상을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후무사 자두를 건네던 분

여수에서 갯장어를 나누던 분들

가마솥 앞에서 함께 웃던 사람들

묵사발과 스키야키를 맛있게 먹어주던 사람...

오랜 시간 아름다운동과 함께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함께 웃었고

함께 아파했고

좋아졌다는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했다

먼저 떠나는 뒷모습도

말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나 역시 아픔을 지나왔고

여전히 삶이라는 길 위에 있다

떠난 사람을 추억한다고 해서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리움 속에는 웃음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조금 늦은 미안함도 함께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마음 덕분에

오늘의 내가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돌아오면 자두를 씻고

더운 날에는 갯장어를 선질하고고

그리운 날에는 묵을 쑤고 따뜻한 국물을 끓인다

그리고 아직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먹으라며 한 점을 건넨다

언제까지 이렇게 음식을 하고

사람들을 추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걷는 동안은...

먼저 다녀간 이들의 흔적도 잊지 않고

지금 아픔 속에 있는 이들의 걸음도 재촉하지 않으며

천천히 더 걸어가고 싶다

이미 별이 되신 분들도

누군가는 잊지않고 추억함에 기쁘지 않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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