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에는 진심으로 쉬고 싶었습니다
요즘 부쩍 체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낍니다
회사 일에 도도브로스 까지...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연휴 며칠만이라도 푹 쉬고 싶었습니다
밀린 생각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좀 세우고...
지난 10년 동안 명절 음식은 거의 제가 맡아왔습니다
제가 아팠을 때 곁에서 돌봐준 아내와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수고도, 그 마음을 생각하면 기꺼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지쳤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니, 올해만큼은 괜찮은 식당에서 가족끼리 편하게 밥을 먹었으면 했어요
식당도 예약해 두었습니다
아들은 연휴가 끝나자마자 중요한 중간고사가 있어서, 명절에 시간을 오래 쓰게 하고 싶지도 않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올해는 당신이 차리겠다고 하십니다
“집으로 와.”
식당을 예약했다고 말씀드려도, 아들 시험 이야기를 꺼내도 어머니의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는 것도 걱정이고, 모처럼 쉬려던 계획도 어긋나는 것 같아 저는 내내 편치않은 마음
그렇게 추석 당일, 어머니가 차린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갈비와 전, 나물 몇 가지... 그간 제가 차렸던 명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밥상을 둘러보다가 몇 가지 음식에 눈길이 멈춥니다
삼색 황태 보푸라기, 연근조림, 오징어숙회, 도라지생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들...
가족모임때 마다 제가 음식을 하다보니... 꽤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어머니표 음식들...
명절마다 어머니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 손자가 좋아하는 음식,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은 챙겼는데 정작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밥상에 잘 올라오지 않아, 그게 오래 마음에 걸리셨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싶으셨다고..
어머니는 그 아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식들을 여태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에 유방암 5년 검진을 마치셨어요. 검진 날짜가 다가오면 저도 마음이 쓰입니다. 어머니가 그 시간을 잘 지나오신 것이 감사하면서도, 아직은 건강을 계속 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습니다
추석 아침 밥상이 너무 임팩트 있게 다가옵니다
쉬고 싶다고 말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당신이 차린 밥을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겠죠?
연근을 조리고, 도라지를 무치고, 황태를 보푸라기로 만들면서 제가 잘 먹던 모습을 떠올리셨겠지요?
오랜만에 먹은 어머니 음식은 참 맛있었습니다
갈비와 전을 뒤로하고, 젓가락이 자꾸 그 접시들로 갑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셨고.. 기뻐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아...
서글프지만...
"나는 나중에 이 음식들로 어머니를 추억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목이 메입니다
짧은 명절휴가를 지내며...
세상에서 저의 아내의 삶이 갑자기 부러워졌습니다
10년 넘게 명절에 전 한번 부쳐본 적이 없는 아내...
오늘도, 재활용 처리와, 빨래를 저에게 맡겨놓고
친구들과 차마시러 갔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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