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문을 내세우는 한 한방병원 원장과의 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도 패소했습니다.
그 원장은 간으로 전이된 구불결장암 4기 환자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아름다운동행에 가입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가입인사를 남겨 글쓰기 권한을 얻자마자, 요양병원을 고민하는 글을 찾아다니며 자기 병원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암환자의 얼굴로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요양병원을 묻는 글은 대개 수술을 앞두었거나 항암을 막 시작한 분들, 혹은 그 곁의 가족이 올립니다. 퇴원하면 어디서 몸을 추슬러야 할지, 집에서 버틸 수 있을지, 가족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지. 가장 막막한 순간에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먼저 다녀온 곳을 알려 주기를 바라며 쓰는 글입니다. 그 원장이 찾아다닌 것이 바로 그런 글이었습니다.
제가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자칭 암 전문 한방병원과 요양병원들이 이곳에서 벌이는 스텔스 마케팅에 대해 판례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다뤄진, 이런 류의 병원들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행님들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환자의 몸 상태보다 실손보험 한도에 맞춰 짜인 처방, 필요를 넘어서는 과잉진료, 월 수백만 원이 넘는 패키지가 아니면 입원이 불가하며, 면책기간에도 쓸 수 있다며 미리 결제해 적립해 두라는 권유도 있습니다. 대가를 받고 환자인 척 쓰는 후기, 환자를 데려오면 보상을 주는 추천인 제도도 있습니다.
투병 중인 사람과 가족은 이런 권유 앞에서 따져 물을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이 건네는 한마디가 더 무겁고, 그 한마디를 흉내 내는 일이 더 해롭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직접 추천한 댓글이 10여 회로 많지 않고, 운영자가 글을 지우거나 강제탈퇴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또 전체 활동에서 홍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요양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이고, 병원에 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린 정황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문을 여러 번 다시 읽었습니다.
10여 회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댓글들은 요양병원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환우와 가족들의 질문 아래 달린 답이었습니다. 몇 번까지는 괜찮고 몇 번부터 안 되는 것인지, 저는 그 선을 알지 못합니다.
운영자가 지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대목은 속임을 알아채고 막아야 할 부담까지 아름다운동행 매니저의 몫으로 남기는 말처럼 읽혔습니다. 2년 동안 암환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을, 운영자는 무엇으로 먼저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이 더 컸다고 했습니다. 암환자가 아닌 병원 원장이, 암환자인 척하며 암환자들에게서 얻으려 한 정보는 무엇이었을까요.
병원에 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암환자라는 말은 거짓이었으나, 병원에 대한 설명에는 거짓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의 말이라 여겼기에 귀를 기울였고, 같은 길을 먼저 걸은 사람의 권유라 믿었기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글을 읽는 환자에게 누가 그 말을 했는가는 내용만큼이나 무거운 정보입니다. 그 사람이 그 병원의 원장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같은 말도 다르게 읽었을 것입니다. 그 댓글을 보고 그 병원에 상담전화를 했던 분이 있었음에도...
아름다운동행은 아픈 사람들이 자기 몸과 가족의 사정을 내어놓는 곳입니다. 다른 데서는 차마 꺼내지 못한 두려움을 여기서는 털어놓습니다. 그 믿음은 이곳을 거쳐 간 모든 분이 함께 쌓아 온 것입니다. 누군가 그것을 제 병원의 홍보수단으로 쓰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믿었고, 그 마음 하나로 오래 이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을 모르지 않습니다. 법정이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을 벌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사필귀정을 믿었습니다.
판결문을 받아 든 뒤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소송비용도 씁쓸하게 남았습니다. 그동안 지켜 온 신념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대법원에 상고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두렵습니다. 이런 일을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남는다면, 같은 일을 꾀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근거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입니다. 판례를 남기려고 시작한 일이 도리어 그들에게 길을 터 주게 될까 봐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을 받아 들고 나니, 병원 원장이 암환자로 위장해 들어와 자기 병원을 홍보해도 결국 제가 먼저 찾아내고, 지우고,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답답합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제 역할조차 지금은 혼란스럽습니다.
길을 잃은 기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동행님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름다운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