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가 한달전에 소풍가셨어요.
소중한 아버지의 투병기를 제가 들은 대로 조금은 정리해서 써볼까해요.
아버지는 1992년도에 처음 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당시 두통이 심하고 어지러움이 있었는데, 동네병원에서 약을 받아 먹어도 낫질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대학병원에가서 뇌 MRI를 찍었고..
크기가 아주큰 종양하나가 떡 하니 발견되었다고 해요.
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흉악하다" 정도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수술을 해야했는데, 아버지는 지역 대학병원이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치료받길 원한다고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먼 지방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에 전원하셨죠.
당시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크기가 너무커서 수술이 불가능하다, 방사선으로 줄여보자.. 하셨고
약 두달가량을 병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아버지는 30대이셨고 특히 어머니는 더 젊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버지의 신앙이 꽃을 피웠다고 하셨어요. 당시 입원중 천주교 수녀님께서 병실을 돌아다니며 기도를 해주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기도를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두달간의 입원동안 다행히도 암이 꽤 줄었고, 수술이 가능한 사이즈가 되어 뇌 수술을 하셨고..
안타깝게도, 완전히 긁어내지는 못하셨어요. 85~90%의 암세포는 긁어서 제거했는데, 나머지 암세포가 너무 위험한
부위에 있어 건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이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었다는 얘기겠죠...
그뒤로 추적관찰을 하시다가 2001년 즈음인가에 한번더 뇌 수술을 하셨고, 조직검사후 나온결과는..
양성 뇌수막종이 아니라, 혈관주위세포종(hemangiopericytoma)이라는 희귀암 이었습니다.
이 암종의 특성은..
암이 진행하는동안 통증이 없습니다.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성장이 아주아주아주 느립니다.
전신어디서든지 발병할수 있는데, 저의 아버지는 그게 뇌였습니다.
육종암이라는 희귀암 암종중 하나에요.
이 희귀암은.. 성장이 아주느린대신, 일종의 임계점을 갖는데, 이 임계점이 넘는순간 급속도로 퍼지면서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때부터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해요.
임계점은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이세상 누구도 그게 언젠지는 알수가 없다고 해요..
아버지는 그렇게 뇌수술을 하신후, 여러가지를 고려하셔서 방사선 치료만 받기로 하셨습니다. 일년에 몇번 검사와 외래를 받고, 검사후 종양이 커지면 방사선 치료를 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방에서 서울까지 KTX를 타고 가면서 투병생활을 하셨어요.
서울대학교 병원의 감마나이프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투병생활을 하던중, 2013년에 찍은 검사결과에는..
전이였습니다. 폐전이가 되셨어요. 4기환자가 되신거죠. 의사선생님은 항암치료를 권유하셨으나...
아버지는 전이가 되었음에도 아무런 문제가없었습니다. 숨쉬는것도 아무런 문제가없었어요.
그리고 항암치료에 안좋은 인식이 있어서, 그냥 안받겠다고 하셨죠. 그뒤로는 그냥 추적관찰... 뇌에 생기면 감마나이프..
감마나이프 시술에 대한 부작용은 없었어요. 아버지는 받고오셔도 바로 일하러 가실정도로요. 처방받는 부작용방지 스테로이드제는 일주일 가량 드셨지만요.
방사선치료를 꾸준히 받아서 그런가, 아버지는 좋아하던 등산을 안가시게 되시더라구요.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걷는데 불안하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으면 넘어질 것 같다" 고 하셨죠.
도심속에서 걷는건 아무문제가 없지만요.
그렇게 살아오시던중, 2021년 1월2일.
점심 시간 즈음에, 왼손에 불편함을 말씀하시고는, 잘 걸으시다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의식은 멀쩡하셨고.. 단지 왼팔 왼다리가 마비가 왔습니다.
통증도 없었지만, 저흰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죠.
검사결과는 뇌경색 이셨어요. 그뒤로 약 10일가량을 뇌졸중집중치료실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뜬금없이 심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어요. 제법큰... 사이즈는 기억이 안나네요.
아버지와 어머니 의견에따라, 서울대학교 병원에 전원하여 치료받기로 했어요.
근데 아직도 기억이나네요. 그 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교수..
치료실 다른 환자들 다있는데 큰목소리로 언제든지 돌아가실수 있다는 식으로 압박을 주면서, 연명치료 거부에 동의하란 식으로 몰아붙였어요.
그밑의 전공의 선생님은 저희한테 정말 잘해주셨는데. 그 교수는 잊을수가 없네요.
여차저차해 전원하여, 다행히 김포에 저의 누나집이 있어서, 누나집에서 서울대학교 병원에 왔다갔다하며 검사를 받고, 외래를 보고...
심장의 문젠줄알고 소화기내과에 허송세월 보내기도하고... 신경외과에도 가고..
혈액종양내과에서 PET-CT를 찍었어요.
결과는, 안 좋았어요.
뇌경색이 온이유가 암세포가 뇌쪽으로 가서 그런거였다고 해요.
전이가 되고 있던것이죠. 당시 뇌 MRI는 깨끗했지만, 이미 암세포가 계속 전이되고 있던거였어요.
이미 전신에 다퍼졌으니까요..
뼈, 근육, 심장, 폐, 간, 복막, 오른쪽다리 뼈안에 반이상 종양이 찼다던가요.
전신에 다전이가되고 뇌로 다시 올라간거였어요.
아버지가 뇌경색 오고 이틀이나 삼일후 부터 하반신에 설명하기 힘든 통증? 같은게 있으셨거든요.
임계점을 넘은 거였어요..
항암치료를 안하면 1년안에 돌아가신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는, 하기 싫으셨겠죠. 하지만 우리가족 전부가 하자고 설득했어요.
한번만 해보자. 그러고 결과를 들을테니 의미가 없다면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1월말, 아버지를 제가 모시고 단기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제가 할수밖에 없었어요. 90년도에 어머니는 젊었지만, 지금 어머니는 50대가 넘거든요.
어머니가 그 긴세월을 아버지 책임지고 간병하신거나 다름이 없죠. 세상누구보다 우리가족이 잘 알아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눈빛을 마주보고선..
제가 하겠다고 했죠. 전 나이도 젊고 직장도없거든요. 제가 아버지 옆에서 모시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요.
그러다 가족끼리 회의를 또했습니다. 항암치료는 어딜가나 비슷하다고 해서, 집이랑 가까운 병원으로 또 전원해서
다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 진행이 너무빠르더라구요. 뇌는 멀쩡했었는데, 한달 사이에 6cm넘게 커버려서..
의사선생님이, 4~6개월을 말씀하시더라구요.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어요. 저만 따로 듣고 나오면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그러고.. 정말 하기싫지만, 어머니 누나한테 연락해서 말했어요.
항암치료 어찌할까요, 하고... 어머니 누나는 동의했어요. 사실 저도 그랬구요.
뭐라도 하고싶었어요. 뭐라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후회할거라면, 항암치료를 해보고 싶었어요.
병동에 올라가서.. 아버지 얼굴을 마주보고..
꾹꾹 눌러담으며.. 아버지한테 말했어요. 아버지가 절대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신것도 있고해서...
아버지는, 하기 싫어하셨어요. 당연하죠. 그게 얼마나 힘든데. 제가 알죠.
근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아버지 설득해보려고 말을하는데.. 참으려고했는데. 참으려고..
제가 어느순간 흐느끼고 있더라구요.. 아버지 앞에서 울면서..
아직도 제가 사무치게 후회하는 그런 순간이에요.. 울면서 아버지한테 해보자고 빌었던거.
아버지가.. 울지마라고 하시면서.. 알았다고 하셨어요. 그러지 말걸 울지 말았어야 헀는데.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사무치게 아픕니다. 담담하게 설득했어야했는데.....
그러지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독소루비신+다카바진 항암을 2회했습니다.
x-ray상으론 별 차이가없었는데.. 항암이 힘들다보니 아버지가 기력이 좀 떨어지셨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
뇌경색도 와서 혼자서 서있는것도 힘드니까 더 그랬던거 같네요.
제 생에 간병은 처음이지만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게.. 24시간을 내내 붙어서 아버지 밥챙겨드리고 기저귀 갈고 소변 비우고..
특히 노력했던게 "고마워요, 사랑해요" 말하기 였던거같아요. 정말정말 많이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버지는 내가더 고맙다고 하셨었죠. 그래도 제 맘을 아셨었겠죠?
두달간 간병생활이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할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젊어서 그런건지.. 얼마든지 더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죠.
그리고 2회 항암의 결과는, 큰의미가 없다 였어요.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몇몇개는 미세하게 커진 느낌인데, 특히뇌가..
뇌가 속도는 좀 줄은 거같은데 여전히 커지고 있었어요.
종합적으론 약이 안듣는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아버지 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결국 사실상 마지막선택지인 표적항암제인 보트리엔트를 쓰게 됐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보트리엔트 약도 부작용이 거의 없었어요. 정말로. 약이 어느정도 듣긴 했나봐요.
뇌는 전뇌방사선을 12회 하려고했어요.
방사선10회를 하고, 두달간 병원생활에 아버지는 너무나 힘들어 하실적..
아버지의 퇴원이 결정됐고, 다음주면 퇴원이라고 아버지를 설득하던 그날..
그날 밤에, 아버지한테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잠을 청했어요.
새벽에 갑자기 아버지가... 식은땀을 엄청나게 흘리면서, 몸을 마구 뒤척이시더라구요.
당황해서 아버지 왜그래요 라고 묻는데... 모르겠다고 엄청나게 끙끙 거리시더라구요.
급하게 간호사 호출하고.. 간호사들 다 뛰어와서 아버지 보살피고..
아버지가 식은땀을 마구 흘리며 괴로워하니 급하게 모르핀을 투약받고.. 진통제 패치 붙이고..
급하게 응급ct찍고 했네요.
ct상 별다르게 문제된건 없는데.. 당시엔 원인을 몰랐어요.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쩔줄 몰라하다 간신히 진정된 아버지를 보고 간신히 잠을 청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께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저희 둘은 의사선생님과 상담했는데..
원인은 급성담낭염이었어요. 담낭액이 나가는 관이 막혀서 염증이 온몸에 다 퍼진거였죠.
담낭염은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아버지는 수술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담즙배액술을 해서 담액을 빼는데.. 아버지가 황달도오고 오줌이 갈색으로 나오더라구요.
당시에 들은게 아버지가 상황이 안좋다고, 이러다 갑자기 돌아가실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결국 완전 무너진 저는 김포의 누나에게 전화해서, 빨리 내려오라고.. 아버지 어떻게 될지모른다고.. 울면서
전화했어요.
그래서 누나가 급하게 내려오고... 코로나 상황이니 왔다갔다하면서 아버지 간호하고..
제가 계속해도되는데.. 저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어요. 1년도 간병하겠다는 제 마음이 무색하게도..
어머니 하고 누나가 아버지 옆을 지키고있었죠.
기적인지, 아버지가 극적으로 담즙이 나가는 관이 다시 회복이 됐어요.
의식도 돌아오고, 식사도 가능해지면서 관을 빼고, 표적항암중이니 퇴원도 했어요.
아버지가 병원에 오래있어서, 병원에 있으시면서 다신 병원오기싫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도 어지간하면 병원에
모시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두세달, 아버지는 점점 말라가고 계셨어요.
뇌경색에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셔서(팔다리 움직이는건 가능했어요). 어머니 혼자였다면 가정간호는
불가능하겠지만 참 우습게도 제가 백수라서 옆에있으니 가정간호가 가능했어요. 최대한 어머니 부담 덜어드리려고
저도 옆에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2주마다 병원에 가면서 결과듣고... 피검사 하고 x-ray 찍고.. 아버지가 참 대단하신게, 피검사 x-ray는 항상 괜찮으셨어요. 마지막으로 찍었던 ct, mri는 나쁘지는 않았어요.
전신에 있는 것들은 변화가없고, 간에있는것들은 작아지고, 커지고.. 무엇보다 뇌에있는게 많이 줄었어요.
의사선생님은 약을 계속 쓰겠다고 하셨으니까. 효과가 있었다고 볼수있을 거 같네요.
희망을, 조금이나마 생각했어요. 1년은 더 살지 않으실까 하고..
하지만 제 희망사항 이였나봐요.
검사상으론 항상 나쁘지는 않았으니 괜찮지 않을까했는데.. 아버지도 꾸역꾸역 죽이랑 반찬드셨거든요. 세끼를 다 챙겨먹고 저희가 약도 빼먹지않고 다 드렸어요. 이도 닦아드리고 욕실로 옮겨서 목욕도해드리고. 스스로 하지 못하시니 저와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서 간병하려고 했어요. 정말정말 노력했어요. 그리고 항상 사랑한다고 말하고 뽀뽀도 하고..
성당에서 신부님이 오셔서 병자성사도 해주시고..
6월 말, 아침식사까지는 그래도 했는데. 늘 그렇듯 주무시는데, 코를 골면서 주무셨어요. 저와 엄마는 좋은갑다 하고 넘겼는데..
그랬는데.. 아버지가.. 깨어나질 않는거에요. 아무리 불러도, 소리쳐도, 뺨을 톡톡 쳐봐도, 흔들어봐도..
아버지가.. 대변을 누시는데.. 힘을 하나도 안주고 누시는거에요. 그렇게 하루에 몇번씩 대변을 누셨어요.
제가 너무나도 많이 찾아봤던, 임종 증상이었죠.. 깨지않고.. 대변을 그냥 누고..
무엇보다 가래가 사라지지 않아요. 목이아닌 가슴 깊숙한곳 부터 끓어오르는 가래소리가 났어요.
가슴이 철렁하면서.. 아... 때가 오고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급하게 누나한테 연락해서, 김포에 있는 누나하고 매형하고 빨리 내려오셔야 한다고 전화드렸어요.
저희 친가 외가가 다 근처에 살아서, 급히 연락드리고.. 다들 오셔서 아버지 보고 주물러주고..
친척들이랑 저랑 엄마랑, 미리 준비하려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7월3일 매형이 내려오셨어요.
아버지는, 저랑 어머니가 부를땐 안깨다가 누나가 부를때 한번 깨서, 대화하고 눈을 잠깐이나마 맞추셨어요.
저하고 엄마는 맨날 봤으니 누나가 너무 보고싶었었나봐요. 그리고 매형도..
"아버지, 아버지 사위 왔어요."라고 말하는데 꺠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누나가
"아빠, OO이 왔어! OO이!" 하니까
눈을 번쩍뜨시더라구요. 누나와 사위가 엄청 보고싶었나봐요.
그렇게 온가족이 아버지 곁에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버지께 이런저런 말 다 말하고..
가래소리는 더 심해졌고.. 아버지 임종 30분전엔 손가락 끝 발가락 끝이 보라색마냥 시퍼래지더라구요.
저희 가족은.. 울면서.. 아버지 이제 가시나보다.. 하며 울었고..
아버지는 마지막 눈물 한방울 흘리시고..
힘겹게 숨을 두어번 내쉬더니,
편안하게 자는 것처럼, 그렇게 떠나셨어요..
아버지 투병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제가..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쓰면서 정리하면 좀 낫지 않을까했어요.
저희 아버지 진짜 대단하시죠? 암 투병만 사실 30년가까이 하셨어요. 그 긴시간을 쉬지않고 일하셨고요.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그 긴시간을 인내와 사랑으로 버티셨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감사하고,..너무 사랑했어요.. 아버지 덕분에 제 짧은인생 정말 행복했고...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싶어서.. 올해내내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 했어요. 제가 하고싶었고 제가 했어야 했어요.
어머니를 더고생시키고 싶지않았어요. 제가 건강하니까.
그리고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병간호 한거. 짧은 이 7개월동안 평생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아버지에게
감사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고 말했던거 같아요. 뽀뽀도 훨씬 많이하고.
그거하나만큼은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버지 하늘나라 가시는 길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시기가 이래저래 잘맞아서, 오실분들 다 오셨고.. 성당에서 장례미사도 지냈고.. 가족묘도 딱 구해져서 모셨고..
비가참 많이왔는데, 신기하게 아버지 운구하는 동안엔 비가 많이 약해지곤 했어요.
한달이 지난 지금, 사망신고와 함께 아버지를 한번 더 뵙고 오면서..
주위에선 하나같이 좋은곳 가셨다고 말씀해 주시네요. 저희 아버지 무조건 좋은곳에 갔다고..
참 좋은 말씀들 많이해주셨어요. 그게다 제 부모님이 쌓아올린 덕이겠죠. 자식으로서 참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슬픔속에 있어요. 누나는 김포에있다가 코로나가 너무심해져서 조카들이랑 내려와있어요.
저도 사실은 좋아요. 누나하고 조카들 있는게 저와 어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거든요.
그래도 사실 여전히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가장 힘든 우리 어머니, 괜찮다고 달래고, 좋았던 추억 말씀드리고, 곁에서 위로하고..
주위에서 어머니 위로 잘해드리라고 하고.. 당연히 그래야 하죠.
사실은 저도 너무힘들어요.
어머니 위로하면서 사실 저도 밤에 몰래 엄청울어요.. 이불뒤집어쓰고 .. 아버지가 너무 보고싶고 그리워요.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뭘해도 아빠생각이 나요. 너무 힘들고 슬퍼서.. 하루종일 폰으로 뭘보면서
잊으려고 노력하는데.. 잊을수가없어요.. 잊고싶지가 않아요.
취직도 안했으니 취직준비도 하고.. 허리가 많이 안좋아져서 치료도 하고.. 해야하는데
여전히 너무힘들어요.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건지.. 삶이 행복하지가 않아요.
어떻게든 버텨지겠지 싶어요. 언젠가는 우는게 아니라 웃으면서 추억하겠지 생각하면서..
긴 이야기인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동행 여러분. 올해 이곳에서 수많은 글을 보고 위로도받고 힘도 됐어요.
따로 글을쓰지는 않았지만 여러분들 덕에 많은걸 배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생각날때, 힘들때 다시 찾아올거 같아요.
언젠가 괜찮아지길 바라면서요.
그간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