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빠 안녕, 나야 늦둥이 딸.

로즈망l췌보
2023.07.17 16:19 | 조회 1.8k

아빠, 나는 자꾸 그 날이 생각나.

단순히 당뇨와 관련된 검사를 하러 병원을 찾아

여명 4개월이라는 감당 못 할 이야기를 듣고 왔지.

그날도 역시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췌장에 혹이 있고, 조직 검사를 했다고 말했었어.

그리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검사를 위해 2박 3일 입원을 했지.

솔직히 그때 나도 모르게 알게 된 것 같아.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나도 어린 나이에 내시경에서 나온 종양의 조직 검사를 해봤지만

별 것 아니니 병원에서 연락조차 오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빠의 병명은 췌장암. 쉽고 간단한 암은 없다는 걸 알지만

왜 하필 췌장암일까 싶었던 것 같아.

전이가 없어 수술할 수 있다는 소식에 솔직히 많이 울었어.

종교도 없는 내가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감사하다 소리도 쳐봤어.

하지만 역시 신은 없었나 봐.

개복하자마자 온몸에 퍼져있는 암 덩어리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덮고 나왔다는 소식에

회사에서 했던 중요한 회의도, 작성했던 서류들도

나중에 보니까 다 엉터리로 해놨더라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병원을 옮기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아빠는 순식간에 나빠졌어.

잘 버티던 석 달, 순식간에 아빠를 앗아간 마지막 한 달.

직접 해주지 못한 말 중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엄마랑 아빠가 나이가 많아서 창피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엄마랑 아빠는 50대가 되어 있었고

친구들 부모님은 다 30대였다는 사실에 나는 오히려 어깨가 으쓱했어.

우리 부모님이 훨씬 어른이라는 사실에. 혹시 걱정했을까 싶어서.

글쎄, 어릴 땐 나이 50에 낳은 애교 많은 늦둥이 딸이었을지 몰라도

내 기억엔 아빠한테 사랑한다 말해본 적도, 표현한 적도 없는 딸이어서,

심지어 아빠의 온전한 육체를 마지막으로 본 그 순간에도 해주질 못해서

그게 가장 아프고 또 아프고 아리네.

아빠, 어쩌면 말이야. 나를 늦게 낳고 일찍 이별한 것이

내가 더 성장하고 단단해진 어른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일 수 있다고 생각해.

주변 친구들보다 더 빨리 부모와의 이별을 겪은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난 이 상황을 버텨낼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래도 거기서 내 모든 걸 지켜보니까 어때?

우리 늦둥이 딸, 많이 컸지?

(아! 맞다, 이제 만나이 적용돼서 나 26살이다!! 내 나이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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