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여름날은 혁혁하였다

미카엘2015ㅣ설본
2023.07.28 16:25 | 조회 232

수국​

이문재

​여름날은 혁혁하였다.

오래 된 마음자리 마르자

꽃이 벙근다

꽃 속의 꽃들

꽃들 속의 꽃이 피어나자

꽃송이가 열린다

나무 전체 부풀어 오른다

마음자리에서 마음들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열엿새 달빛으로

저마다 길을 밝히며

마음들이 떠난다

떠난 자리에서

뿌리들이 정돈하고 있다.

꽃은 빛의 그늘이다.

좋은 시를 읽고 나면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온 듯 청정하고 가뿐합니다. 시인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들을 찾아내는지요. 혁혁하다는 말은 빛날 赫자를 두 번 겹쳐 써서 빛 따위가 밝게 빛나거나 공로나 업적 따위가 뚜렷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 여름이 혁혁하다는 말이 요즘처럼 잘 어울릴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시어의 향연은 벙근다, 나무 전체 부풀어 오른다에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꽃은 빛의 그늘이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사진은 작정하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출퇴근하면서 잠깐 틈을 내어 찍은 사진들입니다. 간혹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다음에 여유 있을 때 와서 다시 찍어야지 생각했다가 다시는 그 장면을 만난 적이 없어 마음에 드는 장면이 보이면 아무리 바빠도 머뭇거리지 않고 사진기를 꺼내들어 셔터를 누릅니다. 무궁화 사진도 그렇게 찍게 되었는데 무궁화 꽃술이 시작하는 내밀한 부위가 초록색으로 칠해진 것을 발견하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쓰셨나 싶어 감탄을 하였습니다. 명품은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을 ‘빛의 그늘’인 꽃을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진과 함께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노래도 함께 보냅니다.

Naver
목록으로

댓글

0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