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니 출근길이 한층 여유로워졌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벚꽃 지기 전에 한 장이라도 꽃 사진 찍어야지 싶어 마음이 분주했었답니다. 이제는 향기 좋은 라일락 몇 장 찍고 여유롭게 출근하던 중 시간이 남아 작고 귀여운 옥매랑 복숭아꽃이나 보고 갈까 해서 누에공원에 들렀는데 그만 거기서 꽃사과나무를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꽃사과는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분홍빛을 띠다가 눈부신 하얀색으로 바뀌는데 그 과정 중에 있는 꽃들을 보니 색이 너무 예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을 하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꽃그늘 아래 더 오래 머물지 못해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꽃사과나무 꽃그늘아래서 저는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라고 읊은 나희덕 시인의 <오분 간>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나희덕 시인의 시는 장작불에 뭉근하게 오래 끓인 국밥처럼 깊은 맛이 일품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 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휜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 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