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덕수궁 산책 -유영국 전시회 '산은 내 안에 있다'

미카엘2015ㅣ설본
2026.08.14 13:41 | 조회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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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참으로 오랜만에 사대문 안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유명 작가의 전시회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이맘때 덕수궁의 배롱나무가 얼마나 활짝 피었을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폭염 때문에 한동안 시내에 나오지 못했는데, 마침 기온이 조금 내려간 틈을 타 아내와 함께 정동길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 유영국의 색으로 만난 산

먼저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유영국 작가의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추상화라고 하면 왠지 어렵고 난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유영국의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눈을 즐겁게 해주어 오랜만에 눈이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더군요.

특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 풍경을 그린 두 점의 작품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도식화된 그림인데도, 그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오래전 제가 직접 보았던 바다가 떠올라 조금 놀랐습니다.

그림 한 점이 기억 속의 바다를 불러내다니….

잠깐이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쾌적한 관람 환경 속에서 이런 귀한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정동길

미술관을 나와 아내와 함께 정동길을 걸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고 계셨는데, 마침 귀에 익은 나나 무스쿠리의 〈Over and Over〉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선율에 순간, 처음 이 노래를 듣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름진 제 얼굴이 잠시나마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년의 싱그러운 얼굴’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더군요. 참, 음악의 힘이 대단합니다. 계속 공연을 듣고 싶었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는 배롱나무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덕수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불이 난 줄 알았던 배롱나무

덕수궁에 들어서자(수요일은 문화의 달이라 무료입장입니다.) 멀리 석어당의 살구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잘 지냈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배롱나무가 있는 석조전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본 배롱나무의 모습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치 나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붉은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거든요.

불길이 어찌나 심상치 않아 보이던지, 순간적으로 '119에 신고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불은 아니었지요. 여름 햇살 아래 활짝 피어난 배롱나무의 꽃이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 여름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오늘이 말복이라고 합니다. 말복이 지나면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가 찾아오고, 곧이어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가 뒤를 잇겠지요.양광모 시인은 〈8월의 기도〉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제 곧 나의 빛이 바랠 것을 압니다 슬픔 없는 따뜻한 이별을 허락하소서.

이제 여름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폭염과 열대야로 참 힘겨웠던 여름이지만, 여름이 없으면 가을도 없듯이 지나고 나면 올해의 무더위마저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겠지요. 붉게 타오르던 배롱나무도, 정동길에서 들었던 오래된 팝송도, 미술관에서 만난 색채도 언젠가는 모두 지나간 여름날의 한 장면이 될 것입니다.

기온 차가 커지는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이 아름다운 계절의 문턱에서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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